갈대  / 신 경 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


                        

                                  <갈대>로부터 시작된 신경림의 시작 생활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농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와 같이 설핏한 민요조 가락에 실어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식인이나 도시인의 시각에 의해 굴절된 농촌이 아니라, 자신을 농촌․농민으로 제한시킴으로써 생생히 살아 숨쉬는 농촌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시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생명 인식을 '갈대'의 울음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소위 민중시 계열로 변모한 70년대 이전의 그의 초기시 세계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 탐구에 주력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인식에서 출발했던 '갈대'의 막연한 울음이, 후일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서 우러난 농민의 아픔이라는 구체적 울음으로 확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는 '갈대의 내면 세계' ― '갈대의 외면 묘사' ― '갈대가 흔들리는 까닭' ― '갈대가 깨달은 삶의 의미'의 과정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대리자로 등장한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따라서 갈대의 '흔들림'은 외부적 원인이 아닌, 내재적 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갈대의 '울음'은 사회적 갈등의 소산이 아니라,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는 의미로,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극적 깨달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울음은 바깥을 향한, 즉 외부 세계를 겨냥한 울음이 아니라, 숙명적 존재임을 인식하고 얻은 내적인 울음이요, 정적인 울음이다. 그러므로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화자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한다면, 이 시는 단순히 그의 슬픈 사연을 담은 작품이지만, 불특정한 인간 전부를 지칭하고 있다면, 이 시는 인간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노래한 시가 됨을 알 수 있다. 어느 쪽으로 보건 간에 <갈대>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시인은 마침내 1960년대 중반부터 민중의 현실과 공감대를 이루는 작품 세계를 통해 외부 세계를 향한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