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 고개




작가 소개

황금찬(黃錦燦 1918- ) <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동인지 <청포도>와 <시단>의 동인. 그의 시는 초기에 향토색이 짙은 것이었으나, 점차 현실성이 강해지면서 상징적 표현 수법을 도입하게 됨. 시집으로 <현장>(1965), <5월 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1973) 등이 있다.




시 전문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로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블랑은 유럽,

와스카란은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낭만적. 의지적. 체험적. 비극적

심상 : 시각적 심상

구성 :

   1연  온 가족의 슬픔

   2연  우리 민족의 고난과 대비된 외국의 산

   3연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운명

제재 : 보릿고개

주제 :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삶의 애환

출전 : <현장>(1965)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초근 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우리 민족의 헐벗고 가난했던 삶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대다수의 국민이 처해 있던 가난, 그 가난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참한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지난날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모르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보릿고개’는 어떤 산의 고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넘어야만 했던 가난의 고개인 것이다. 가을에 거둔 쌀이 겨울 한철 나기에도 부족한 것이어서 이듬해 봄 보리가 날 때까지 굶주리던 넘기 힘든 고비를 ‘보릿고개’라 이름한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굶주림, 그 가난은 할아버지로부터 화자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 아니 대다수의 국민이 겪어야만 했던 수난이자 눈물겨운 삶의 고개였다. 따라서, 그 고개를 잘 넘으면 한 해를 그럭저럭 살 수 있고, 넘지 못하면 죽음과 직결되는 운명의 고개였던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년’은 화자인 나와 동일한 인물인데, 배고픈 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고 하늘이 ‘한 알의 보리알’로 보인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가난과 기아로 점철(點綴)되던 과거의 시대적 여건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