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돌아오시니

- 재외 혁명 동지에게 -




작가 소개

정지용(鄭芝溶 1902-미상) 시인. 충북 옥천(沃川) 출생.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 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유리창1”, “비”,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시 전문




백성가 나라가

이적(夷狄)에 팔리우고

국사(國祠)에 사신(邪神)이

오연(傲然)히 앉은 지

죽음보다 어두운

오호 삼십육 년!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허울 벗기우고

외오 돌아섰던

산(山)하! 이제 바로 돌아지라.

자취 잃었던 물

옛 자리로 새 소리 흘리어라.

어제 하늘이 아니어니

새론 해가 오르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밭이랑 문희우고

곡식 앗어 가고

이바지 하올 가음마저 없이

금의(錦衣)는커니와

전진(戰塵) 떨리지 않은

융의(戎衣) 그대로 뵈일 밖에.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사오나온 말굽에

일가 친척 흩어지고

늙으신 어버이, 어린 오누이

낯설어 흙에 이름 없이 구르는 백골

상기 불현듯 기다리는 마을마다

그대 어이 꽃을 밟으시리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시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시어 정리

이적(夷狄) : 오랑캐

국사(國祀) : 나라의 제사(祭祀)

사신(邪神) : 사악한 귀신

오연(傲然) : 태도가 거만스러움

외오 : ‘잘못’을 말함

자휘(字彙) : 글자의 수효, 여기서는 이름을 의미함

문희우고 : 무너뜨리고

가음 : 감. 재료나 바탕

금의(錦衣) : 비단옷

전진(戰塵) : ①싸움터의 먼지나 티끌. ②싸움터의 소란

융의(戎衣) : 옛날 군복의 한 가지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내재율

성격 : 현실 참여적

어조 : 격정적 어조

표현 : 후렴구 반복. 영탄법. 반복법. ‘새론’이나 ‘사오나온’ 등의 조어법(造語法). ‘-라’로 끝나는

           아어형(雅語形) 어미의 적절한 배합

구성 :

   1연  일제 강점하의 고통 회상

   2연  후렴구

   3연  해방을 맞이한 기쁨과 미래에 대한 희망

   4연  후렴구

   5연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이유

   6연  후렴구

   7연  독립을 위한 고통

   8연  후렴구

제재 : 민족의 해방

주제 : 해방의 기쁨

출전 : <해방 기념 시집>(1945)




이해와 감상

이시는 해방 후 임시 정부 요인들이 환국(還國)했을 때, 그들 앞에서 낭송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시는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당대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로 해방을 맞아 처음으로 간행된 앤솔로지(anthology)인 <해방 기념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우익 문학 단체인 ‘중앙문인협회’ 주관으로 1945년 12월 발간된 이 시집은 좌․우익의 구별 없이 전체 문단을 망라하여 24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찬가(讚歌)나 헌사(獻詞)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위의 정지용의 시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해방을 맞는 감격의 직접성과 내면화된 서정성이 잘 조화되어 있는 뛰어난 수준을 보여 준다.

이 시는 그 부제에서 보듯 해방을 맞아 귀환하는 재외 혁명동지에게 바치는 헌사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그 귀환의 감격을 직설적으로 반복함으로써 표제시(標題詩)의 의미를 직접 드러내 준다. 재외 혁명 동지의 ‘피 흘리신 보람’은 상대적으로 ‘죽음보다 어두운 36년’의 고초가 클수록 그 빛을 발휘하는 것이어서, 후렴구인 ‘그대들 돌아오시니 /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의 시행은 36년 간의 지난 현실과 적절한 대응을 이룸으로써 그 귀환의 감격을 배가시켜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부분에서 보듯, 고난의 현실 묘사에 이어 해방의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구조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한편, 재외 혁명 동지들의 귀환이 그저 금의환향(錦衣還鄕)이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것은 그러한 과거의 ’죽음보다 어두운 36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꽃을 밟을 수가 없고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면서 귀환해야만 하는 조국의 현실로 상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