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다고
                      시.이상화

사람만 다라워질 줄로 알았더니
필경에는 믿고 믿던 하늘까지 다라워졌다.
보리가 팔을 벌리고 달라 다가 달라다가
이제는 곯아진 몸으로 목을 댓 자나 빼주고 섰구나!

반갑지도 않은 바람 만 냅다 불어
가엾게도 우리 보리가 달 증이 든 듯이 노랗다.
풀을 뽑느니 이랑에 손을 대보느니 하는 것도
이제는 헛일을 하는가 싶어 맥이 풀려만 진다!

거름이야 죽을 판 살 판, 거루어 두었지만
비가 안 와서 원수 ㅅ놈의 비가 오지 않아서
보리는 벌써 목이 말라 입에 대지도 않는다.
이렇게 한 장 동안만 더 간다면
그만,  그만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노릇 이구나

하늘아 한 해 열 두달 남의 일 해주고 겨우 사는 이 목숨아
곯아 죽으면 네 맘에 시원 할게 뭐란 말이냐
제발 빌자!  밭에서 갈잎 소리가 나기 전에
무슨 수 가 나 주어야 올 해는 그대롤 살아나가 보재!

다라운 사람 놈의 세상에 몹쓸 팔자를 타고나서
살도 죽도 못해 잘난 이 짓을 대대로 하는 줄은
하늘아!  네가 말은 안 해도 짐작이야 못했것나.
보리도 우리도 오장이 다 탄다.  이러지 말고 비를 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