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 교수의 글쓰기 특강

(사)국어정보학회장/한양대학교 국문과교수
글쓰기 특강 50 (서사문 쓰기)

9) 서사문 쓰기
서사문이란 앞에서 다룬 서사법을 주로 하는 긴 글을 말한다. 곧 서사법으로 된 단락들이 여러 개 모여서 이루어지는 글이 서사문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글은 글 전체가 행동이나 사건을 다룬 것이 된다. 소설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어떤이의 전기라든지, 역사적 기록이나 기사문 따위도 서사문에 든다. 자기가 보고 겪고 한 행동이나 생활 수기 같은 것도 서사문에 든다.
이런 글을 쓰는 데는 앞에서 말한 서사법의 요령을 잘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서사문에도 설명법이나 묘사문 같은 다른 전개법이 곁들여지기는 하지만 그 중심되는 것은 서사법이다. 시간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이나 사건을 다룬 부문이 그 중심을 차지하는 만큼 서사법이 기본이 되는 것이 다. 따라서 서사문을 잘 쓰려면 서사법을 더욱 잘 익혀 둘 필요가 있다.
다음 서사문은 옛날 고사를 중심으로 몇 개의 서사법 단락과 설명법 등이 곁들여서 이루어진 서사법의 보기이다.
[보기 9.53] 은 항아리
어린 자식 또는 손자에게 수십억짜리 재산을 탈법 편법으로 미리 상속해 준 사람들이 한동안 화제 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탐욕과 빗나간 가족 이기주의를 개탄하면서 <청구야담>이라는 조선 후기 야담집에 실린 한 중인 신분층 부인의 일화를 되새겨 본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한 여인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 둘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날 집 뒤 뜰에 채소라도 심어 생계에 보태려고 밭을 일구러 나갔다. 한참 호미질을 하는데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큼직한 단지가 있고 그 안에 은화가 가득하였다.
부인은 얼른 흙을 모아 단지를 다시 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집안 식구가 아무도 모르게 했다. 부인은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일하고 두 아이들을 정성으로 가르쳤다. 그리하여 두 아들은 재능있고 건실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형은 선혜청의 관리가 되고 아우는 호조의 하급 관리가 되었다.
살림이 자리잡히고 손자들까지 모두 장성한 어느날 노부인은 자손들을 모두 불러 뒤뜰을 파고, 은전이 가득 든 항아리를 열어 보게 했다. 이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땅을 파다가 보니 이 항아리에 은전이 가득하지 않겠니. 그때는 생계가 무척 어려웠더니라. 저걸 내다가 팔면 당장 큰 부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너희들을 생각해보니, 아직 어린 것들이라. 지각이 들지 않고 어린 때에 부유한 것에 익숙하고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면서 어찌 즐겨 공부하려 하겠느냐. 주색과 유흥에 빠지는 게 뻔한 일이지. 그래서 이 항아리를 곧 덮어버리고 너희들로 하여금 춥고 배고픈 고통과 재물의 아까움을 느끼며 글 공부와 생업에 부지런하도록 했던 것이다."
권력과 명성이 드높아서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 부인의 반에 반만큼도 지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그들은 혹시 지난 30년간 집 뒤 뜰의 단지 속에 자기 양심을 꼭꼭 묻어 두었던 것은 아닐까.
-- 김흥규, <동아일보> 1993.5.8
위 보기처럼 서사문은 그 다루는 사건에 따라서는 큰 감동을 주는 일이 많다. 그 사건과 행동이 가지는 의미가 깊을 수록 그런 효과는 큰 것이다.
다음 예문은 어릴 적에 있었던 사건을 회상하여 쓴 서사문이다. 이 글은 소재와 사건의 배경이 독특한 바가 있어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바가 있다.
[보기 9.54]
2학년 2학기가 되었다. 늦은 가을을 맞아 작문 담당의 와따나베 선샌은 우리들에게 자유 제목으로 작문을 지어 내라고 했다. 이 선생은 동경대학 출신의 웅변가로서 이 학교의 부교장직도 맡고 있었다.
나는 "나의 희망과 농업 학교"라는 제목으로 공책 6페이지쯤 되는 긴 작문을 썼다. 작문 내용은 주로 교장 선생이 학교운영을 잘못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었다. 쉽게 말해 교장을 까고 교육 방침을 비판하는, 당시의 학생 신분으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이었다. [중략] 심지어는 교장 선생이 관존민비의 사상을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으니 매우 유감스럽다는 것까지 지적하였다. 교장 선생은 걸핏하면 학생들에게,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 가면 군청 서기나 혹은 면 사무소 서기가 되라고 하면서 왜 농업 학교에서 훌륭한 농업 기술을 배워 고향에 가 일등 가는 독농가가 되라는 말은 않는가? 하고 비판하였다. [중략]
나는 이 글을 써놓고도 작문 공책을 내놓을까 말까 몹시 망설이다가 "나의 바른 양심의 소린데 뭐"하는 생각이 불끈 오기처럼 솟아나 그대로 내놓았던 것이다. 지난번 상급생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정의를 위해서 용기 있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확신을 얻은 때문이기도 하였다.
한 주일이 지난 후 작문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와따나베 선생은 작문 공책을 한아름 안고 교실로 들어와 학생들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러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 작문 공책은 돌려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이구, 내 작문이 드디어 걸렸구나."
어린 마음에 가슴이 철렁 내리 앉는 듯했다. 그런데 와따나베 선생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조용해요. 내가 작문 하나를 읽어 줄 테니, 잘 들어 봐요."
그는 고마쓰 교장 선생의 비리를 지적하여 쓴 나의 작문을 웅변적인 어조로 유창하게 다 읽었다. 학생들은 숨을 죽인 채로 듣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곤 했다.
내 작문을 시원스레 다 읽은 와따나베 선생은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똑똑히 들어요. 여러 학생들의 작문은 대체로 천고마비의 가을 하늘이 맑고 푸르고, 어쩌고 하면서 남의 글 흉내를 낸 글들이 많았는데, 그런 글은 죽은 글이야. 그런데 공병우 군의 글은 매우 색달라. 내용이 살아 있는 진짜 작문이란 말이다. 그런 점을 참작해서 오늘 작문 시간에도 자유 제목을 또 줄 테니 한 번 더 써보도록 해요. 공 군의 작문은 압록강일보에 보내어 신문에 실리도록 할 테니 신문에 나거든 다시 잘 읽어 보도록 해요." 나는 이같은 칭찬의 평보다는 만일 교장 선생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와따나베 선생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교실을 나가 버렸다. 나는 작문 공책도 없이, 만약 교장선생이 이 일을 말면 어쩌나 하고, 한 시간을 초조하게 보냈다.[중략]
이같은 작문 파동이 있은지 사흘째 되는 날, 예측했던 대로 사환이 내게와서 "저년 식사후 교장 사택으로 오라"는 교장의 지시를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올 것이 왔구나"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퇴학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관례로는 교장이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여러 선생들 앞에서 큰 소리로 꾸중을 하면 용서를 받을 학생이고, 퇴학을 시키기로 한 학생은 따로 사택으로 불러 조용히 타일러서 누구도 모르게 집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 예사였기 때문이다.[중략]
드디어 나는 교장 선생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기분이었다. 퇴학을 어떤 방식으로 나한테 말씀하실 것인가 그것만이 남은 문제였다. 이윽고 교장의 말씀이 떨어졌다.
"너는 앞으로도 1년을 더 다녀야 이 학교를 졸업하겠지만, 이미 너는 졸업생과 동등한 실력이 있다고 본다. 이 학교를 더 다닐 필요가 없어. [중략] 의사가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알겠나? 그래서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치과 의사, 어때 해 볼 생각은 없나?" [중략]
교장 선생의 말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장 선생의 말을 도저히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교장의 꿍꿍이 속이 무엇인가를 알게된 것 같았다. 역시 예측한 대로구나, 결국 나를 내쫓겠다는 말이구나. 나는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입밖으로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교장은 나에게 손수 차까지 권하면서, 계속해서 부드러운 말씨로 치과 전문 학교를 적극 추천하는 것이었다.[중략]
다른 학교로 옮기겠다는 학생이 있으면, 왕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치던 바로 그 교장 선생이 이렇게 인자하게도 나에게는 두 군데씩이나 갈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주었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고마운 생각보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것도 바로 자신을 비판한 학생에게 온정이 넘치는 특혜까지 주겠다니,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중략]
-- 공병우, "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 중에서
위 글은 그 소재와 배경이 특이할 뿐 아니라 서술 방식도 서술문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교장의 태도에 대한 의외성을 점층적으로 부각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계속 이끌어 가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서사문에서는 이처럼 독자의 관심과 기대감을 계속 붙잡아 둘 뿐 아니라 점층적으로 고조시키는 수법이 중요하다.
다음의 보기는 일종의 소설 작품이다. 소설 등의 작품은 그 줄거리로 보면 모두 서사문에 속하며, 사실상 서사문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무엇보다도 서사문을 가장 잘 익혀서 숱한 이아기를 창작하는 이라 할 것이다.
[보기 9.55] 도레드의 진주
동녘 하늘의 구름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이 서산에 저무는 노을 보다 아름답다고 누가 나에게 말할 수 있을까? 수다한 나무들 중에석 감람나무와 파초 나무의 어느 편이 더 아름답다고 누가 나에게 말할 수 있을까? 여자들 중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를 나는 너에게 말하리라. 그것은 브라카스의 "도레드의 진주"라는 여인이다.
흑인 쥬잔니는 창을 들라고 명하였다. 방패를 들라고 명하였다. 창음 바른 손에 들었다. 방패는 목에 걸었다. 외양간으로 가 사십필의 말들을 한마리씩 검사하였다.
"베르쟈'가 가장 씩씩하다. 널찍한 이 말 궁둥이에 "도레드의 진주"를 태워 가지고 데려 오자. 만약 그렇지 못하면 천지 신명에 맹세하노니 나는 두번 다시 이 거리의 흙을 밟지 않으리라!" 쥬잔니는 채찍을 들었다. 말을 몰았다. 도레드에 다달았다. 자가단 부근에서 한 늙은이를 만났다.
"백발 노인이여! 이 편지를 사르다냐에게 전해 주시오. 사르다냐가 사내다운 사내라면 아루마미의 늪가로 나와 결투를 하러 올 것이요."
하며 노인에게 편지를 내주었다.
노인은 편지를 받아, 이내 사르다냐 백작에게 가져 갔다. 때마침 백작은 도레드의 진주와 둘이서 장기를 두고 있었다. 백작은 편지를 읽었다. 그는 결투장을 읽은 것이다.
백작은 손으로 책상을 굳세게 두드렸다. 장기말이 이리저기 뛰어 떨어졌다. 백작은 일어섰다. "창을 들라, 준마를 끌어내라"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따라 일어서는 진주도 전신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진주는 사내가 결투하러 가는 것을 눈치채었던 것이다.
"백작 영감님! 가시면 안 됩니다. 제발 부탁이오니 나와 장기를 더 두어주세요."
"나는 장기를 두지 않으련다. 아루마미의 늪 가에서 창으로 사람 찌르기 내기를 해야 한다."
진주의 눈물도 사내를 붙잡기 못하였다. "그러면, . . . 하고, 진주도 몸에 만또를 휘감았다. 진주도 뒤이어 말을 잡아 타고 아루마미의 늪가로 말을 몰았다.
늪 가의 잔디밭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늪의 물도 새빨간 피 빛이었다. 잔디를 붉게 물들인 것은 기독교도의 피는 아니었다. 흑인 쥬잔니가 번듯이 나가떨어져 있었다. 결투로 백작의 창이 가슴에 꽂힌 채 부러진 것이었다. 전신의 피가 차츰 줄어들었다. 그 옆에서 베르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주인을 굽어 보고 있었다.
진주는 말에서 뛰어내려 쓰러져 있는 쥬잔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기병이시여! 정신을 차리세요. 다시 소생하셔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으세요. 나의 손은 당신의 상처를 낫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오 순결한, 순결한 진주여! 오오 아름다운, 아름다운 여자 진주, 나의 가슴에서 , 이 가슴에 꽂힌 창 조각을 뽑아 주시오! 나의 피를 얼리고 있는 이 창 조각을 뽑아 주시오!"
진주는 의심치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사내는 끙 하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하여, 손에 들었던 칼을 들어 아름답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상처를 내었다.
-- 정비석, <소설 작법> 중에서 재인용
위 글은 "정렬 속에 흐르는 질투 심리"를 주제로 하여 엮은 꽁트이다. 이런 창작 서사문에서는 대개 주제를 명시하는 문장은 없이 다만 사건의 서술을 통하여 그것이 드러나도록 한다. 단편, 장편 등의 소설도 대체로 같은 수법으로 선택된 사건의 서술을 통하여 주제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설 작품은 가장 전형적인 서사문이 되는 것이다.
서사문 작성법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소설 작품 등 전형적인 서사문을 쓰는 수련을 쌓아야 할 것이다. 곧 소설 작법 등을 따로 공부하고 작품을 쓰는 습작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웬만한 서사문은 앞에서 익힌 서사법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쓸 수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얼마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많이 써보느냐에 달렸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