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으로 규모는 약 5,590㎡이다. 풍수지리설을 믿은 대원군 이하응이 한 풍수가에게 명당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풍수가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4년(헌종 10) 대원군은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썼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報德寺)라 이름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道文)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載晃)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탄압을 가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