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글>

 제5회 한ㆍ일 문학 교류 <시의 축제>에 다녀와서

                                                                     성 기 조 (시인, 한국문협 명예회장)

  제 5회 한ㆍ일 문학교류, <시의 축제>가 2천 9년 7월 26일, 도오쿄 한국문화원 강당에서 열렸다. 일본과 <시의 축제>를 열어 본격적으로 문학 교류를 시작한지 5년, 세월은 참으로 빨랐다.

 2천 4년, 일본의 시인 몇 명이 서울에 왔을 때, 이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개인적인 왕래 보다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으면 한다는 나의 제의에 일본 시인들이 뜻을 같이 하여 2천 5년 4월에 나리따(成田市)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도미사토시(富里市)에 있는 레디슨 호텔에서 첫 번째 교류가 시작되었다.

 한ㆍ일 두 나라의 문학교류로 <시의 축제>를 개최한 그 동안의 성과에 관해서는 일본측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아끼다 타카토시(秋田高敏) 시인의 말대로 “그 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면서, 또한 작품을 낭독하면서 한ㆍ일 두 나라의 시문학 발전에 이바지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 증거는 한ㆍ일 두 나라에서 이 행사를 개최하기 위하여 발간되는「한ㆍ일 합동시집」에 수록된 시인만 보아도 2천 9년에 일본에서 58명, 한국측에서 18명의 시인이 참가했다.

 일본 영시협회의 고리야마 나오시(郡山 直)시인의 ‘오바마씨’란 시는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뜻 깊은 시로, 원폭피해를 입은 일본의 지식인으로서 당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즈사키 노리코(水崎のりこ), 야나기하라 아스코(楊原泰子)시인의 뛰어난 시와 이이지마 다케타로(飯嶋武太郎) 시인의 “그것은 한 장의 메모로 부터”란 시는 한ㆍ일 문학교류 <시의 축제>가 열리게 된 최초의 기억을 감동적인 시로 나타낸 것이었다.

 80명에 가까운 양국 시인들의 낭독이 이어지는 세 시간 동안, 한 번의 휴식이 있었을 뿐, 두 나라 시인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으면서 행사를 끝마쳤고 곧 이어진 저녁식사를 겸한 간친회 석상에서는 酒興(주흥)이 도도하여 손뼉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면서 저녁 아홉시 가까워서야 축제의 막이 내렸다. 해가 갈수록 알차고 속 깊은 우정이 샘솟듯, 두 나라 시인들의 친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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