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

                                                                   홍윤숙

친구여 보이는가

우리 잠속에 지금도 출렁이는 유년의 강

광나루 뚝섬 미루나루길

봉은사 가는 한낮의 나룻배

도리지꽃, 보라빛 도라지꽃 무더기로 쏟아지던

마포 앞 강의 저녁 어스름

우리들 어린날 기억의 계단에

무성영화 처럼 돌아가고 있는

천연색 사진들 사진 속에 찍힌

진보라빛 유년의 발자국들 보이는가

그 시절 강은 길고 보드라운 잔물결로

내 곤한 잠속에 숨어들어와

어린 날개 연꽃처럼 적시며

칠석날 연등놀이 인도교 밑을 흘러갔다

수만 장 깨어져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수만 개 불을 띄워

어디론가 끝없이 흘러갔다

우리들 잠속을 흘러갔다.

 

 

 

한강 3

친구여 오늘그  강가에서

그처럼 한 시대 어두운 암벽을 기어오르며

날마다 비에 젖던 생애의 아침들을

지체없이 실어내고 실어오던 그 강가에 서서

물에 어린 그림자도 아름다운

한 그루 미루나무로 서서

잠시 이 세상 흘러가는 강물 따라

흐르는 강물이 되어보는 넉넉함을

이재는 우리에게 허락해도 될까

무성한 가지며 잎을 흔드는

아직은 드센 하늬바람 서북풍를

오늘은 한 소절 음악으로 들어도 될까

어느날 우리 이  강기슭에 아름다운 목숨 받아

수난과 시련의 짙푸른 미루나무 또는

백양으로 자란 서러운  내력을

이제는 자랑스레 말해도 될까

여한없이 후세에 전해도 될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흐르는 강은 죽지 않는다

외쳐도 될까 우리 믿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