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에 걸린 편지
                           이 길원

어머니,
거친 봉분을 만들어 준 전우들이
제 무덤에 철모를 얹고 떠나던 날
피를 먹은 바람만 흐느끼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총성은 멎었으나 숱한 전우들과 버려지듯 묻힌 무덤 가엔
가시 면류관
총소리에 놀라 멎은 기차가 녹이 슬고
쓰러질 때까지 걷힐 줄 모르는 길고 긴 철조망
겹겹이 둘러싸인 덕분에 자유로워진 노루며 사슴들이
내 빈약한 무덤가에 한가로이 몰려오지만
어머니, 이 땅의 허리를 그렇게 묶어버리자
혈맥이라도 막힌 듯 온몸이 싸늘해진 조국은
굳어버린 제 심장을 녹일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를 그렇게 마시고도
더워질 줄 모르는 이 땅의 막힌 혈관을
이제는 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식어버린 제 뼈 위에 뜨거운 흙 한줌 덮어줄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무덤 가에 다투어 피는 들꽃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