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거울

                                                              박만진

가야산은 산기슭에 숨은 듯 감춘

폐사된 보원사지를 허허로이 비우고

좌탈입망坐脫立亡하듯 만산홍엽 떨구며

잘 익은 가을을 떠나보낼 채비와

제 몸에 품고 있던 물까지

꾸륵꾸륵 마저 다 토해내고 있었네

옛 영화 아무 흔적도 없고

시작과 끝, 흥망과 성쇠가

너무도 분명한 절대 풍경에

석물石物만 상처이듯 유적으로 남아

한 물결이 만 물결을 따른다고

강당골 계곡 굽어 흐르며

산 그림자 낮추어 물 위를 건너는 햇살에게

육전六錢 소설 이야기 조調로 말씀 이르고

우뚝 선 암벽에 돋을새김 한

웅숭깊은 마애삼존불께서도

폐사지, 그 향내 나는 상처

흐르는 물거울에 살짝 비추어

백제의 미소 푸르고 맑게 씻으시네




[다층]에 게재된 작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