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 책 쌓다

                                                  박만진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더니

눈 씻고 찾아도 길은 보이지 않고

무 씨앗 같기도 하고

배추 씨앗 같기도 한 글씨와

하얀 어둠만이 자욱하다

지금 이 작은 도시마저 길을 접어

계단을 만든 아파트가 숲이다

들썽거리는 거개의 사람들이

책을 펴자마자 하품이 나고

졸음이 몰려온다는 까닭 알겠다

하얀 어둠을 먹고 사는

글씨가 곧, 글의 씨앗이고

책 속에 해우소解憂所 있어

몸 문을 열고 뒤를 보는 일은

오줌이 마침표인 것이다

방언과 표준어의 뜻을 밝히는

불빛 그림자에 책 책책 쌓아놓고

책을 보다, 책과 씨름하다, 라는 말은

몸의 눈이 글을 읽고

마음의 눈이 글을 먹는 일이거늘

우리 어찌 풋감을,

설익은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정신과 표현] 3,4월호에 게재된 작품.